요올로롸이푸 님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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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 5. 21.

    by. 요올로롸이푸

    목차

      건축

      서론 – “폐허 위의 설계도: 건축은 전쟁을 기억하는 방식이다”

      전쟁은 도시를 파괴하지만, 동시에 그 폐허 위에 새로운 건축적 기억을 남긴다. 전쟁 후의 도시재건은 단순한 복구 작업이 아니라, 역사적 상처를 어떻게 기억하고, 미래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에 대한 집단적 선택이다.
      특히 베를린, 히로시마, 키이우는 각각 2차 세계대전, 핵폭격, 현대 전쟁이라는 상이한 파괴를 경험했고, 그에 따라 건축적 대응 또한 기억, 화해, 저항이라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이 글에서는 전쟁이 남긴 물리적 흔적과 그에 대응한 도시의 건축적 재구성을 중심으로, 세 도시의 상처가 어떻게 공간 속에 새겨지고 다시 태어났는지를 살펴본다.


      1. 베를린 – 분단과 통합의 도시 구조

      1-1. 전쟁의 폐허에서 냉전의 상징으로

      2차 세계대전 동안 연합군의 집중 폭격을 받은 베를린은 도시 대부분이 잿더미가 되었고, 전후에는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4개국에 의해 분할 점령되었다. 이로 인해 도시는 물리적으로나 이념적으로 분단된 상징적인 공간이 되었고, 그 절정을 보여준 것이 바로 1961년 건설된 베를린 장벽이다. 장벽은 단순한 콘크리트 구조가 아니라, 감시탑, 지뢰지대, 통제 도로를 포함한 복합적 경계체계였으며, 도시를 두 개의 체제로 분리된 공간으로 만들었다.

      1-2. 통합 이후의 건축 재구성

      1990년 독일 통일 이후, 베를린은 세계 도시 가운데서도 유례없는 기억과 통합의 건축 실험실로 변모하였다.

      • 브란덴부르크 문은 분단의 상징에서 통일의 상징으로 기능 전환되었고, 그 인근에 설치된 **홀로코스트 추모비(Memorial to the Murdered Jews of Europe)**는 독일이 과거를 감추지 않고 역사의 책임을 공간적으로 기록하는 시도를 보여준다.
      • 라이히스타크 건물 복원 프로젝트는 원래의 역사적 외관은 유지하되, 내부에 현대적 투명 돔을 얹은 방식으로 재탄생했는데, 이는 민주주의의 개방성과 역사 인식의 투명성을 은유하는 상징적 건축으로 평가받는다.

      2. 히로시마 – 핵과 재생, 세계 평화의 상징 도시

      2-1. 핵폭탄의 중심에서 평화의 중심으로

      1945년 8월 6일, 인류 최초의 핵폭탄 ‘리틀보이’가 투하된 히로시마는 순식간에 인구 35만 명 중 약 14만 명이 목숨을 잃는 참사를 겪었다. 도심은 완전히 파괴되었고, 유일하게 남은 구조물 중 하나인 **원폭 돔(Genbaku Dome)**은 전쟁의 폐허를 상징하는 살아있는 건축물로 남겨졌다.

      • 이 건물은 철거 논란 끝에 보존이 결정되었으며, 199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는 건축물이 고통의 기억을 담은 증거물이자 평화의 교육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2-2. 건축을 통한 기억과 평화의 메시지

      전후 재건을 계획한 히로시마는 단순히 옛 도시를 복원하는 대신, '평화기념도시'로의 재탄생을 선택했다.

      • 탄게 겐조의 히로시마 평화기념관은 건축적으로도 근대 일본 건축의 전환점을 상징하며, '기억의 통로'라 불리는 긴 회랑을 지나며 방문자는 피해자들의 유품과 기록을 마주하게 된다.
      • 이외에도 히로시마 평화공원, 평화의 종, 평화의 불꽃 등이 도시 전역에 배치되어 있으며, 이는 도시 전체가 평화를 상기시키는 살아있는 박물관이자, 전쟁 반대의 메시지를 전 세계에 전하는 건축적 언어로 기능하고 있다.

      3. 키이우 – 현재진행형 전쟁과 건축의 저항

      3-1.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도시 파괴

      2022년 러시아의 전면 침공은 수도 키이우를 포함한 우크라이나 전역을 현대 전쟁의 시험대로 만들었다.

      • 미사일과 드론 공격으로 인해 병원, 학교, 주거지, 유서 깊은 문화재가 파괴되었으며, 도시 곳곳에 크고 작은 폐허와 파편 흔적이 남겨졌다.
      • 특히 키이우 시민들은 전투 중에도 지하철역을 방공호, 응급처치소, 커뮤니티 공간으로 재구성하며, 공간이 단순히 피난처를 넘어서 저항과 연대의 장소로 기능하는 상황을 보여주었다.

      3-2. ‘지금도 쓰는 건축’과 재건을 위한 기록

      우크라이나는 전시 중임에도 불구하고 재건을 위한 데이터 구축과 문화유산 보존을 위한 건축 기록화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 키이우 건축가협회, 유네스코, ICOMOS 등이 협력해 파괴된 건축물의 3D 스캔, 드론 촬영, BIM(건축정보모델링) 데이터 확보를 진행하고 있으며, 이는 향후 복원을 위한 정밀 도면이자 역사적 증거자료로 활용될 예정이다.
      • 또한 우크라이나 내외 건축학교에서는 **‘전후도시 재건 스튜디오’**를 개설하여 학생들이 실제 전쟁 피해 지역을 바탕으로 복원 시나리오를 설계하고, 이를 국제 건축 커뮤니티와 공유하고 있다. 이는 전쟁 건축이 단지 파괴가 아닌 창조로 나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의 실천이다.

       

      결론 – “건축은 폭력의 흔적을 지우지 않는다: 상처 위에 새겨진 공동의 기억”

      베를린은 분단을 넘은 기억의 도시가 되었고, 히로시마는 폐허에서 평화를 건축했다. 키이우는 아직 전쟁 한가운데 있지만, 이미 건축으로 저항하고, 공간으로 살아내고 있다.
      전쟁은 도시를 파괴하지만, 그 도시들은 건축을 통해 자신을 다시 정의하고, 상처를 기억하며, 미래를 설계하는 힘을 만들어낸다.

      건축은 단순한 복구가 아니라, 역사적 서사와 정치적 메시지, 공동체의 감정을 담는 담론의 도구가 된다. 전쟁이 남긴 흔적은 곧 우리가 미래에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