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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건축도 윤리를 품어야 한다
1-1. 건축은 인간의 삶을 담는 그릇
건축은 단순한 구조물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는 집, 일하는 사무실, 여행 중 머무는 숙소까지, 모든 공간은 인간의 삶과 관계, 감정, 기억을 품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공간을 만드는 과정에서 자연 파괴, 자원 낭비, 환경 오염이 필연적으로 발생한다면, 우리는 그 대가를 고스란히 다시 감당해야 합니다.
1-2. 탄소중립 시대, 건축 윤리는 선택이 아닌 필수
전 세계는 지금 탄소중립(Net Zero Carbon) 목표를 향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탄소중립은 더 이상 에너지 관련 산업만의 과제가 아니며, 건축 분야는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37%를 차지하며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제 건축가도 단순한 공간 디자이너가 아닌, 윤리적 선택과 지속 가능성을 실현하는 책임자가 되어야 합니다.
2. 탄소중립을 위한 건축적 접근 전략
2-1. 탄소 저감형 설계와 시공 방식
건축물은 설계에서 시공, 운영, 해체까지의 전 과정을 통해 탄소를 배출합니다. 이 전 과정을 고려한 ‘전 생애주기 탄소배출(Life Cycle Carbon Emission)’이 바로 현재의 친환경 설계 핵심 지표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기술은 다음과 같습니다:- 패시브 디자인(Passive Design): 건축물 자체가 외부 환경과 상호작용하여 냉·난방 부하를 줄이는 설계 기법입니다. 남향 배치, 이중 유리, 열교 차단, 자연 환기 설계를 통해 기계 장치 없이도 쾌적함을 유지합니다.
- 제로에너지건축(ZEB): 국토교통부는 2030년부터 모든 공공건축물의 ZEB 인증을 의무화하고 있으며, 민간에도 확대 중입니다. 이는 단순 에너지 절약을 넘어, 자체 생산(태양광·지열 등) + 고효율 소비 + 고단열 구조로 ‘에너지 자급’을 실현합니다.
- 고성능 단열재/기밀 시공: 기존 벽체보다 열전도율이 낮은 재료(예: VIP 진공단열재, 난연 우레탄폼 등)를 사용하며, 창호와 벽체 연결 부위에는 기밀 테이프와 실란트를 적용하여 열 누수 및 외기 유입을 차단합니다.
- BIM(Building Information Modeling): 3D 시뮬레이션을 통해 에너지 부하를 사전 분석, 자재 낭비를 줄이고 공사 단계에서 이산화탄소 발생을 최소화하는 설계 효율성을 제공합니다.
✅ 국내 제도 흐름
- 건축물 에너지 소비총량제도(2020년 시행): 설계 단계부터 에너지 성능 총량을 산정하여 기준 이하일 경우에만 허가 가능
- 제로에너지건축물 인증제(ZEB): 5단계로 구분되며, 1등급 인증 시 가중평균 탄소배출량 '0'에 도달해야 함
2-2. 지역 재료의 사용과 탄소 발자국 감소
건축 자재의 운송 단계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은 총 건설 탄소량의 약 15~20%에 달합니다. 따라서 자재의 원산지와 이동 거리, 즉 **탄소 발자국(Carbon Footprint)**이 주요 친환경 설계 지표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전략이 지역 재료(Local Material) 사용입니다.- 목재: 탄소를 저장하는 자연 자재로, ‘순음(-) 탄소 자재’로 불립니다. 북미와 유럽은 지역산 목재만 사용한 건축물에 인증 가점을 부여합니다.
- 흙과 황토: 현대 건축에도 적용 가능한 재료로, 단열·조습 성능이 뛰어나며 현장 내 직접 채취도 가능
- 현무암, 화강암 등 지역 석재: 제주도, 강원도, 경상북도 등에서 지역성을 살린 건축 재료로 활용 중
- 지역 조달 원칙(Local Procurement Rule): 공공 프로젝트에서 80% 이상을 해당 지역 내 생산 자재로 제한하는 조례들이 점차 확산 중
✅ 국외 사례
- 노르웨이의 Svart 호텔: 북극권 근처에 위치하며, 주변 삼림에서 벌채한 목재만 사용하여 시공. 자재 운송 거리를 1,000km 이상 줄였고, 이는 연간 120톤 이상의 탄소 절감 효과로 이어짐.
- 일본의 지역재 활용 규제 완화: 목조건축 장려를 위해, 일본 정부는 2021년부터 자국산 목재 사용 시 건축기준법 일부를 완화하는 정책 시행 중
3. 건설 폐기물과 자원 순환 – 건축의 끝도 설계되어야 한다
3-1. 건설 산업의 숨은 진실: 쓰레기의 왕국
국토교통부 통계에 따르면, **건설 폐기물은 국내 전체 폐기물의 약 48%**를 차지합니다.
이 중 콘크리트 잔재, 철근, 석고보드, 마감재, PVC 배관 등은 분리수거나 재활용이 어려워 대부분이 소각 또는 매립됩니다. 특히 재건축과 리모델링이 증가하면서 비산먼지, 석면, 중금속 유출 등 2차 환경 피해도 증가하고 있습니다.3-2. 순환 건축(Circular Construction)의 원칙과 기술
- 설계 단계부터 해체를 고려: 부품화·모듈화된 자재 사용으로 철거 후 재사용 가능
- Dry Construction(건식 시공): 콘크리트보다 철골조, 패널 시공 방식을 활용해 현장 폐기물 발생량 감소
- 재생 자재(Recycled Material) 사용 증가:
- 예: 폐유리 재활용 유리 블록, 폐PVC 타일, 폐콘크리트 골재
- 건설 자동화 기술을 통해 정밀 시공 → 재료 손실 최소화
✅ 국내 정책 흐름
- 2024년 시행: ‘건축물 해체계획서 제출 의무화’ → 폐기물 종류와 양을 미리 예측하고 관리 계획 수립
- 건축자재 분류코드 시스템 도입 예정(2025): 자재별 재활용률, 탄소등급, 유해성 정보를 QR 코드로 표시하는 제도
✅ 선진 사례
- 네덜란드의 ‘Brummen 시청사’: 완전 분해 가능한 구조로 설계되어 해체 후 95% 이상의 자재를 새 건물로 재사용 가능
- 서울시청 신청사: 기존 건물 해체 시 폐콘크리트 일부를 재활용하여 신축 건물 기초 부재에 재사용
4. 건축가의 사회적 책임 – 공간을 넘어 생명을 설계하다
4-1. 윤리적 공간은 누구를 위한 공간인가
건축은 물리적 공간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사람의 삶의 질과 존엄을 보장하는 역할을 합니다. 즉, ‘건축 윤리’는 단지 환경을 고려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공동체를 위한 공간 구성, 도시 환경과의 조화까지 포함합니다.
- 유니버설 디자인 적용: 고령자, 장애인, 아동 등 모든 사용자의 접근성과 안전성을 고려
- 공공성과 열린 공간의 확보: 공공건축물, 커뮤니티 시설은 단절된 공간이 아닌 지역 사회와 소통하는 열린 구조로 설계
-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재생 지역에 설계 개입 시, 원주민 배제를 막기 위한 임대료 완화·사용자 우선권 부여 등 설계 전략 필요
✅ 국내 사례
- 서울 ‘마포 석유비축기지 재생 프로젝트’: 산업유산을 문화공간으로 재생하고, 시민에게 개방
- 부산 감천문화마을: 기존 주민 주거지를 보존하며 관광·예술적 기능을 융합한 공간으로 재탄생
4-2. 건축가의 역할, 설계자를 넘어 ‘실천자’로
이제 건축가는 단순히 ‘공간을 설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 환경 디자이너: 탄소, 자원, 폐기물 관리를 설계로 풀어내는 전문가
- 커뮤니티 메이커: 지역과 공동체의 연결고리를 만드는 공간 연출자
- 윤리 실천가: 설계 결정 하나하나가 사회와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고려하는 책임자
✅ 세계적 발언
- 비아르케 잉겔스(Bjarke Ingels): “건축가는 이상적인 세상을 설계할 수 있는 유일한 직업이다.”
- 카즈요 세지마(Kazuyo Sejima): “공간이 누구에게 열려 있는가가 건축가의 윤리를 판단하는 기준이다.”
5. 건축, 지구를 위한 실천이 되다
건축은 단지 구조물을 짓는 일이 아닙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탄소를 배출할 수도, 줄일 수도,
자원을 낭비할 수도, 순환시킬 수도,
사회를 분절시킬 수도, 연결할 수도 있습니다.탄소중립 시대, 건축은 ‘기술’이 아니라 ‘윤리’로 평가받는 영역입니다.
앞으로의 건축가는 이제 기능적 공간 설계자를 넘어, 지속가능한 삶과 지구를 책임지는 실천가가 되어야 할 때입니다.'건축'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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